[기자의 눈] 진정한 혁신은 문제 해결
한국의 혁신 스타트업을 미국 투자자들에게 소개하는 행사인 코리아 콘퍼런스를 취재했다. 스타트업 대표들의 열정적인 프레젠테이션이나 화려한 요트 위에서 열린 네트워킹이 확실히 기억에 남았다. 해가 지는 산타모니카 바닷가를 바라보면서 투자자들이나 기업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실 정말 기억 속에 남은 것이 있었다. 뽀로로를 제작한 오콘 스튜디오의 김일호 의장은 스타트업들의 발표를 다 본 소감을 물었을 때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들어진 기업들이 인상 깊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다들 혁신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혁신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좋은 기업”이라고 말했다. 취재를 끝내고도 내내 맴돌던 말 한마디였다. 혁신과 문제 해결의 차이는 무엇일까? 혁신은 오랜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서 여러 분야의 변혁을 일으키는 것을 혁신이라고 부른다. 가장 대표적인 혁신은 우리의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스마트폰일 것이다. 스마트폰이 대중화한 이후 일상생활에 생긴 변화는 확실히 ‘혁신적’이었다. 당장 미디어 업계만 보더라도 스마트폰은 사람들이 뉴스를 소비하는 패턴 자체를 바꿔버렸고, 대부분의 언론사 모두 이런 트렌드에 적응하려 무진 애를 써왔다. 반면에 특정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집중하는 기업들도 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불편을 느끼는 지점을 ‘페인 포인트’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고통을 느끼는 지점이란 의미다. 이런 페인 포인트를 집어내고 나만의 방식을 통해 개선해서 이를 사업화 해내는 것은 항상 높은 평가를 받는다. 코리아 콘퍼런스에서 만난 스타트업 또한 문제 해결을 위한 곳이 많았다. 엠비트로의 이영우 대표는 당뇨병으로 고통받는 어머니를 보면서 혈당검사를 보다 더 쉽게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령자나 어린이들은 바늘로 피를 내는 과정이 무섭거나 귀찮아서 혈당검사를 자주 하지 않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렇게 그는 바늘 없이 레이저를 통해서 혈당을 측정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들기 위해 7년간 꼬박 연구한 끝에 상품화에 성공했다. 혈당검사를 하면서 겪는 ‘고통’이란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행사에 참석한 다섯 개 업체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 에이슬립은 스마트폰 마이크만으로 수면검사를 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했다. 인공지능을 통한 기술개발을 시작할 때 착안점 또한 ‘문제 해결’이었다. 누구나 숙면을 위해서 수면검사를 받아보고 싶지만 병원에서 하는 것이 불편해 망설이게 된다. 이런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성공하자 SK와 같은 대기업들과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최근의 국내 기술업계는 인공지능(AI)을 통한 혁신에 온통 정신이 팔렸다. 앞으로 우리 모두의 일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AI가 우리를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인도할 것이라고 다들 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엄청난 돈이 투자되고 있으며 혁신을 앞당기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물론 이런 혁신은 많은 사람이 바라는 것이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향을 우리의 삶 전반에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혁신을 위해서는 일상 속의 문제 해결이 선행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하지 않아도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줄 AI는 너무 멀리 있는 이야기지만, 병원에 가지 않고도 수면의 질을 높이고 아픔 없이 혈당을 측정하는 세상은 아주 가까이 있다. 혁신보다는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사람들 덕분에. 조원희 /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혁신 문제 혁신 스타트업 사실 혁신 다들 혁신